그는 시선을 부릅뜬 채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경련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웃는 낯에 뻗었다.
입을 움직여 무어라 말을 뱉으려하지만, 강재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죽어가는 동물의 신음 소리. 하이에나에게 목을 물어뜯긴 늙은 사자. 그런 짐승의 말을 이젠 포식자의 정점에 올라선 강재인이 알아들을 리 없었다.
강재인은 흘러내리는 머리를 갈무리해 고개를 숙였다. 밝은 머리칼이 그녀의 어깨를 따라 흘러내렸다. 나긋한 음성이 귓바퀴로 흘러들었다.
“... 편히 눈 감으세요. 당신이 악착같이 긁어모으려 했던 돈도, 손에 구정물 담궈가며 쌓아올린 명예도요. 이제 모두 이승의 것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저승 가시는 길, 무사히 도착하시라고 노잣돈 정도는 남겨 둘 테니까요. 비소섞인 언사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의 호흡마저 읽어내며 의중을 꿰뚫어보던 그의 탁한 눈은 병실의 천장을 응시했다.
숨을 들이키듯 입을 벌렸다. 탄식같은 긴 숨소리를 내쉬었다.
그것이 장희준 회장의 마지막 호흡이었다.
강재인은 장희준의 미동없는 동공을 내려다보았다. 움직임을 멈춘 얼굴의 근육이 어항의 수조등 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생태계의 꼭대기에 올라섰던 자. 타인의 운명을 제 손으로 좌지우지하며 약자들을 짓밟던 자.
늙고 병든 그의 몸뚱이로는 피튀기는 생태계의 전장에서 군림할 수 없다. 생태계는 끝없이 순환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윽고 땅으로 돌아가고 자취를 감춘다. 그렇기에 자연은 자손을 남기지 못한 개체에게 더욱 잔인하다.
장희준의 뒤를 이을 자식이라고는 없었다.
그마저도 자신의 손으로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세속에 묶이고 만 그의 차가운 몸뚱이를 내려다보았다. 정점에서 피식자들을 아우르던 패자覇者의 모습이라곤 이제 없었다.
맥박이 멎은 손등에 더는 수액이 타고들어가지 않았다. 강재인은 손을 들어 장희준의 흡뜬 눈을 감겨주었다. 언젠가는 길거리를 전전하던 자신을 거둬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평온하게 감긴 눈을 보던 강재인은 짐짓 애처로운 낯을 했다. 그리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옥에서 뵈어요, 회장님.”